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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 과기대 정진호 교수]사랑, 부르짖다 죽을 그 이름이여...
남전도회  2005-01-26 16:39:57, 조회 : 1,989, 추천 : 217

사랑, 부르다가 죽을 그 이름이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의 에로스 사랑에 대한 완전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선포와 그에 따른 영적 전쟁으로 이루어져 왔다.

(1)

청춘 예찬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애틋하게 남아있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 젊은 날의 뜨거웠던 첫 사랑의 열정이 아닐까? 오직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그 이름 만큼이나 순수하고 설레는 말... 첫 사랑!! 인간만이 지닌 보석같이 빛나는 그 사랑의 감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시와 노래들이 탄생했을까? 그러나, 섣부른 첫 사랑의 함정에 발을 헛디뎌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수렁에 빠져버린 연인들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채 피어보지도 못한 인생의 젊은 꽃봉오리들이 실연의 구덩이 속에서 눈물과 고통으로 몸부림 치다가 지쳐서 쓰러져버리기도 한다.



첫 눈에 홀딱(?) 반하는 그런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랑을 못 해본 것이 정말 아쉽다고도 한다. 물론 상상 속에서는 멋있고 좋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랑은 가급적 말리고 싶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경험상(?) 그런 사랑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너무나 크고 깊게 마련이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표피적인 감정에서 바로 파국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 더구나 첫 사랑이 그렇게 다가온다면 대개 실패할 확률이 크고 상처도 깊게 남는다. 예방 접종이 안 된 어린이가 급성 바이러스에 걸리듯, 인생의 경험도 예비지식도 없는 순수한 젊은 남녀가 그런 사랑에 노출되면 그들은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며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감정의 혼수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같이 잘못 내딛은 어설픈 첫 사랑의 후유증으로 청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학 생활을 완전히 날려버린 대표적인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인생 후배들과 언젠가 청춘의 열병을 앓아야 할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을 위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볼 때, 나는 책벌레로 지내어 몽상에 쉽사리 빠져들고 더러 이상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을 제외하면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 더욱이 사회적 관행을 따라 인생의 모든 척도를 좌지우지하는 대학 입시에 목매달며 오직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모범생이었다. 마침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후, 그 당시 풍습을 따라 자랑스러운 S대학 배지를 달고 첫 등교를 하던 그 시절의 설렘은 아직도 추억 속에서 생생히 다가온다. 마치 온 세상을 내 손안에 얻은 것 같이 느껴지던 나날들이었다. 장미 빛 꿈과 희망이 내 인생의 앞길에 거침없이 펼쳐질 것만 같았던 그 무렵에 나는 친구의 소개로 신촌의 한 여대생을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서 첫 사랑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눈앞이 혼미해지며 아마도(?)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오직 그녀를 보고 싶은 한 가지 생각으로 내 머리 속은 진공 상태가 되고 말았다. 호젓한 찻집에서 두근거리며 그녀가 나타나기를 애태워 기다릴 때는 온 우주의 시계가 잠시 멈추어 선 것만 같았다. 만나서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며 다닐 때면 세상에 아무 부러울 것 없이 마냥 그렇게 좋았다. 무작정 행복했고 잠시라도 헤어지기가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자신의 작은 세계에 폭 빠져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연애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여자가 항상 남자보다 현실적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녀의 어느 정도 계산된(?) 순진한 표정과 춤추듯 하는 감정 변화에, 그리고 혼을 빼앗아가듯 하는 그 웃음소리에 내 온 마음과 정신이 홀려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웃음 뒤에 조금씩 다가오는 감춰진 불안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동성동본이니, 집안이 전혀 맞지가 않는다든지 하는... 점차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녀가 먼저 헤어짐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첫 해 크리스마스의 아련한 추억을 마지막으로 이별의 편지를 한 장 남기고 그녀는 모질게 사라져버렸다. 그 편지에는 그 동안 자신이 내게 고백했던 모든 말들은 거짓이니 이제 자신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말고 깨끗이 잊으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대처승이라고 하던 그녀는 마치 속세를 떠나버린 비구니처럼 내 시야에서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문제의 본질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왜 내 안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깊은 허무와 갈증이 심연처럼 출렁이고 있었던지,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한 내 몸짓과 몸부림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그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술과 담배로 자신을 자학하며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시절 세상 사람들을 향해 실연당한 사람의 표본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수염을 거칠게 기르며 장발의 히피처럼 살았다. 전공과 대학 생활의 의미는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도로를 질주하던 어린아이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것이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세상의 온갖 우수와 슬픔을 머금은 채 끝없는 허무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점차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주변에는 술 취한 아마추어 철학자의 취중 담론을 즐기는 더 많은 술친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나는 몇 번인가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되는 날은 항상 마음을 고쳐먹고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결심한 날이었다. 마치 그녀가 풀어내는 불가(佛家)의 끈질긴 인연의 실 타래가 누에고치처럼 나를 칭칭 휘감고 있는 듯,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다시금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원점으로 떨어지는 감정의 혼돈을 겪곤 했다. 대학가의 데모로 어지러웠던 80년의 봄, 그녀를 잊기 위해 나는 다시 다른 여인을 사귀고 있었다. 두 번째 여자는 아무 소망도 없어 보이던 나에게 미안할 만큼 헌신적인 사랑을 표현했다. 그 여인을 통해 어느 정도 삶의 안정을 되찾고 있었던 대학 졸업반의 어느 날, 첫 사랑의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내게 보였던 지난날의 설명하기 힘든 행동 방식에 대한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만일 지금 이 순간 그녀를 끊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이제 회복될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떠밀려 갈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잡고 그녀를 냉정히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여인과도 헤어진 후 졸업을 맞았다.

 

두 번째 여인은 큰 부잣집(?) 딸이었다. 처음엔 그런 사실에 관심도 없었던 나는, 그 일이 가져 다 줄 또 한번의 상처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딸을 가난하고 힘없는 불량(?) 소년으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기 위해 국외로 출국 시키는 그녀의 집안으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수모와 소외를 당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 대한 심한 염증을 느꼈다. 그리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는 그 분노를 삭일 도피처가 필요했다. 군대를 마치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첫 번째 여인은 종종 내 시야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TV의 뉴스 앵커가 되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절 나는 순수했던 나에게 무자비한 상처를 입힌 그녀들의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며 오직 인생의 성공을 위한 질주에 매진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All A+의 성적을 받아보기도 했다. 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를 무시하던 세상에게 과시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장래에 대한 성공 야망으로 불타 올랐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 생활은 술이 없으면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 초기 증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커피 잔을 들기 힘든 상황까지 되었다. 나는 심신의 깊은 상처에 허덕이며 극심한 편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내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절망감으로 깊은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간 무렵...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시절 만나기만 하면 술만 마시고 아무 말도 없이 음산한 정물화의 실루엣처럼 앉아 있던 나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주었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 끝에 프로포즈도 한번 안 한 상태에서, 무작정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가 부모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아버렸다. 그녀의 의사를 무시한 일종의 폭력이었다. 그 같은 나를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가 받아들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야말로 나는 수렁에서 건진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영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 걸음을 떼게 되었다.



요즈음은 첫 사랑이 TV에 등장해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내가 참 신기하다. 얼마 전 어느 정치 신당의 대변인이 되어서 그녀가 또 다시 화면에 나타났을 때 왠지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옆에서 장난스럽게 저렇게 매력 없는 여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었냐고 눈을 흘겼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정말 저 여자가 옛날에 내가 그토록 사랑(?)하여 미칠 것만 같았던 그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렇구나... 참 사랑의 본질을 알지 못할 진데, 인생이란 까딱 잘못하면 실상도 아닌 신기루에 속아서 허겁지겁 달려가다가 지쳐서 쓰러지고 마는 사막의 목마른 나그네에 불과하구나. 참 생수가 솟아나는 그 샘물을 발견하기 전에는 말이다.

(2)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미와 사랑과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탄생을 이렇게 묘사한다. 천공(天空)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아들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크로노스는 대지(大地)의 여신인 어머니 가이아의 음부 속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진다. 이렇게 하여 바다를 떠다니는 성기 주위에 하얀 거품(아프로스)이 모이고, 그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처녀 아프로디테가 생겨났다. 징그럽고 불쾌하기까지 한 이야기 속에서 미와 사랑의 화신이 탄생하는 이 설화가 담고 있는 의미의 이중성이 있다. 친부(親父) 살해를 통해서라도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음모와 욕망... 그리고 바다를 떠다니는 거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인본주의적 사랑의 정수인 에로스(Eros)의 개념이다. 권력과 욕망의 부산물로서 나타난 아프로디테는 남편인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몰래 군신(軍神) 아레스와 통정하여 아들 에로스(큐피드)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사랑의 화살을 쏘아 연인들을 사랑에 빠뜨리던 큐피드는 자신의 화살에 거꾸로 맞아 공주 프시케(Psyche)를 사랑하게 된다. 인간 정신과 혼(魂)을 상징하기도 하는 프시케는 지금도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정신을 잃게 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 사랑에 빠지게 하곤 한다.  



첫 사랑도 그 본질을 살펴보면 대부분 자기 성취와 만족을 위한 에로스적 욕망의 산물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실연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세상을 향한 야망과 질주 그 모든 것이 자기만족이라는 바위덩어리를 더 높은 욕망의 언덕 위로 끌어올리고자 하다가 끊임없이 실패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는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 그가 가르치는 사랑은 우리가 도무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사랑이란 자기 본위가 아니라 철저히 사랑을 받는 대상이 본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 아가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 사랑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간음한 여인을 붙들어와 고소하며 예수를 시험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질문 공세를 받으며, 허리를 굽히고 앉아 묵묵히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적고 있었던 예수... 그가 그 순간 적었던 글이 바로 ‘아가페’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불의는 끝없이 감추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완악함에 예수는 서글픔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을 위해 자신이 져야 할 아가페의 십자가에 대해 다시 한번 묵상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예수는 고개를 들어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한 마디로 성난 군중을 모두 물리친다. 그리고 일어나 죄로 인해 죽어 가는 그들을 구원키 위해 마침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십자가는 아가페 사랑, 그 절정의 현장이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우리가 정말 부르다가 죽을 사랑이란 에로스가 아니라 아가페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에로스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고 말지만, 아가페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자기 성취를 위해 주변에 상처들을 남기지만, 아가페는 자신이 홀로 상처 받는 그 희생으로 주변의 상처 받은 영혼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나 먼 타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통해 쓰인 사랑 이야기들이 지금도 세상 어디엔 가 보석처럼 빛나며 남아있을 것이다.



아무리 퍼부어도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닫힌 영혼들... 겨우 그 마음 문 열어 놓으면, 받고 또 받기만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끝없이 욕심만 부리는 사람들... 겨우 한 사람 변화시켜 놓으면, 이리 저리 눈치를 보다가 곧 실속을 챙겨 달아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애태우며 기도하다가 속상하고 힘이 들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그 서러움...

그 마음을 체험한 사람만이 그 사랑을 배운다.  



1995년 겨울 티베트의 수도 라싸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어느 선교사 부부가 생각난다. 고산지대의 겨울은 음산하고 황량하여 길거리마다 모래바람이 죽음의 그림자를 몰고 이리 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비좁고 을씨년스러운 집으로 들어가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고 기가 막힌 심정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부인을 바라보았다. 미국에서 살다가 왔다는 그녀의 얼굴은 매서운 고산 바람에 온통 갈라지고 거칠게 터져 있었다. 양 볼은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어 현지의 티베트 여인들같이 마치 설익은 사과처럼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그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냥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밤, 그 부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티베트에서의 첫 크리스천을 얻기 위해 그들이 쏟았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서장의 대학생 하나를 섬기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붓기 몇 년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욕하며 따돌리는 그 집 앞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들고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몇 시간을 떨고 서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그 학생이 나오더니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하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결국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던 제자가 어느 날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고백할 때 나 역시 함께 눈물지며 그 사랑을 느낀다. 중국 남방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또는 여러 나라에 유학을 떠난 제자들이 틈틈이 보내오는 편지들을 통해 그 사랑의 감격을 느낄 때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유학중인 어느 제자가 보내온 편지 한 통....

정진호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교수님의 학생 M 입니다.



지금 저는 코스타 사이트에 방문하여, 교수님이 쓰신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우리들이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도 적다고 푸념까지 했던, 우리들이었군요...

그리고 교수님과 사모님, 그리고 다니엘의 고난에 가까운 삶을...



어린 다니엘을 배워줄 때, 좀 더 열심히 가르치지 못한 것이 후회 되는군요. 걔가 저보고   "형, 저 힘들어요."라고 했던 말의 뜻도 이제야 많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그냥 막연하게 이국 땅에서 생활하는 게 힘들겠지 라고 만 생각했었어요...



행운스럽게도 몇 년 동안 교수님의 지도학생으로 가르침을 많이 받아왔지만, 교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에야 제가 아주 행운스러운 놈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씩 내가 만약 교수님과 같은 처지라면, 이렇게 중국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생각도 해봅니다.



아직은 교수님의 제자라고 하기는 참 부끄럽군요.

교수님, 기다려주세요. 꼭요.

교수님이 원하는 제자로 클 때까지요.

언젠가는 교수님이 중국 땅을 밟으신 것처럼, 저도 북한 땅을 밟고 싶습니다.

그분이 이끄심과 함께...



한밭, 계룡산 기슭에서, 제자 M 올림.

2002년 겨울 토론토를 방문했다가, 1888년 조선 땅을 밟았던 캐나다 선교사 게일의 생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어느 목사님께서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아침 일찍 찾아오셨다. 폭포를 향해 가던 중 게일 선교사 이야기가 나와 가던 차의 방향을 중도에 북쪽으로 틀었다. 그러나 그날 따라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차 앞의 시야를 가렸다. 여기 저기 길목에서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더 이상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가로막았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나에게 게일의 생가를 꼭 보여주길 원하셨던 그 목사님은 끈질긴 집념으로 가시거리(可視距離)가 전혀 없는 위험한 눈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몇 시간 만에 마침내 그 집을 찾아내었다. 차에서 내려서 약 100m 정도의 길을 걸어가는데, 얼마나 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지 몸이 번쩍번쩍 들리는 것만 같았고 안경은 곧 성애로 얼어붙었다. 게일의 생가 앞에서 겨우 사진을 몇 장 찍고 황급히 돌아서서 다시 차 안에 앉았다. 차 안은 따뜻하고 조용하여 바깥의 눈보라를 전혀 의식치 못하는 딴 세상 같았다. 묵묵히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그 먼 옛날 이 곳에서 어두움에 갇힌 조선 땅을 밟기 위해 소명의 길을 떠났을 스물 다섯의 젊은 청년 게일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의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통해 조선 땅에 빛이 들어오고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사무실과 집의 벽에 붙여놓고 한번씩 읽어보는 시가 있다.





<뵈지 않는 조선의 마음>

                                                                언더우드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우리 앞에 가신 믿음의 선진들... 그들이 남긴 사랑의 발걸음들, 그 발자국 위에 우리가 서 있다. 양화진에는 국적을 초월하여 죽기까지 조선 백성을 사랑했던 외국인들의 아름다운 아가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들의 믿음대로 이루어진 오늘날 한국의 실상을 확인하며, 중국과 북한 땅을 향한 새로운 사랑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부르다가 죽을 그 사랑의 이름은 십자가에 새겨진 아가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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